본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배워야할 시기에 배우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배울 수있는 기회를 주어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민주시민으로서의 공민적 자질을 함양시켜 가정고 사회와 국가를 위한 훌륭한 역군을 양성한다.
1968년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에서 학생 15명으로 개교
1969년 학생수의 증가로 보서군 노동면 광곡리로 학교 소재를 옮겨 재건 국민운동 중앙회에 재건학교로 등록
1971년 화순지역 통학생들이 많아 광곡리 소재 희망재건학교는 그 지역 '조남송' 지도자에게 물려주고 화수눈 능주면 백암리에 학교부지 1000평을 마련 20평형 교실 4칸, 15평형 교무실 1칸, 기숙사 (20평형) 1동, 500평형 운동장을 신설. 학교다운 교육황경을 마련
1976년 재건국민운동 중앙회가 해체되고 신협법 제 31조 1항 6호의 규정에 의거 재건학교를 새마을 청소년학교(중앙교도위학교 설립법 제 1791-1호)로 개칭
1978년 설립자 故 정영식 교장께서 과로와 지병의 악화로 1월4일 타계하시어 고인의 장형인 정영관 교장선생이 그 유지를 이어 2대 교장으로 취임
1980년 청소년 인력이 도시의 공업화로 흡수됨으로써 온천에서는 가르칠 대상이 줄어들자. 학교 소재를 교통이 편리한 화순읍 교리 소제 단독주택을 임대하여 재학생이 중학 2학년 과정 5명, 3학년 과정 4명, 신입생 7명 도합 16명을 종전 주간 3년 과정의 교과 과정에서 1년 속성의 야간 교과 과정으로 운용방침을 바꾸게 되었음
1981년 4월 단독주택의 열악한 교육환경 때문에 스라브 2층 건물을 임대하고 학생모집을 시도하였으나 적정수 미달로 12명 남은 재학생을 일시에 수료시키고 폐교가 되었음
1981년 9월
새마을 공장 공원들을 대상으로 다지리 1구 부락회관을 임대, 보수하여 중학과정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증설. 명실공히 중.고 과정의 야간학교로 재출발하게 되었음
1982년 7월
새마을 공장이 문을 닫게 되어 학생들이 전국 각처로 직장을 구하여 떠나게 됨으로써 다시 폐교가 됨
1982년 8월
광주 유동 3거리에 위치한 기독교 청년회사무실을 지도 목사님의 배려로 무료 임대하여 새로이 학생모집을 하여 화순 잔류 학생들과 합하여 중, 고 과정의 야간 학교 수업을 시작함
1983년 6월
교회사정으로 배움의 자리를 잃은 희망인들은 가르치고 배울 자가 없어서 다시 폐교가 됨
1983년 10월
광주 동구 계림1동의 건물 2층 옥상을 임대. 50평형 천막교실을 어렵게 마련하였으나 불법 건물로 철거를 당해야 했음
1984년
광주지역과 서울 지역에 본교를 이해하는 분들이 후원회를 조직하여 광주지역에서 100만원, 서울 지역에서 50만원의 후원금으로 계림 1동에 건물 3층 50여평을 월새로 임대, 교실 2칸과 교무실 1칸의 내부구조를 갖추고 4월 13일 학교 소제를 옮겨가면서 새롭게 입학식을 갖게 되었음
1984년 9월
주간에 비어있는 교실활용의 일환으로 어머니 교실을 신설, 초등과정과 중등과정의 성인교육을 병행. 주야간 교육을 실시하게 됨으로써 주간에는 성인. 야간에는 청소년의 교육장으로 '희망 새마을 청소년학교' 명칭을 '희망 학교'로 개칭하게 되었음
1985년 7월 22일
전남대학교 유네스코 학생회와 자매결연을 맺음
1986년 6월
새마을 문고 동구 지회의 협조로 본교에 광주 동구 새마을 문고센터 를 설치 3천여권의 교양도서를 확보하여 누구나 읽고 싶은 책을 손쉽게 읽을 수 있는 문고 운영을 하게 되었음
1986년 10월
광주지산지역 (지기청)기독교 청년회와 자매결연을 맺음
1987년 12월
'하나로 희망' 이라는 제호로 교지 1호를 창간하게 되었고,제 1회 '희망 겨울제'를 실시 발표력과 표현력 연마의 축제를 갖게 되었음
1988년
열악한 교육환경과 건물 임대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딱하게 여겨 신안교회 박성수 장로님과 사모님이신 홍효슌 권사내외분의 각별한신 사랑으로 본동(계림동 505-844_) 80평형 되는 건물 (독서실로 사용되고 있음)을 매입 전액 완전 무료로 무한정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심으로서 종전 주야간 6학급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15개학급으로 확대되어 보다 많은 인원으과 과정을 교육할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음
1994년 4월
'이심'선생님을 본교 교감선생님으로 추대함으로써 학교 운영 및 확대교육 발전에 새롭고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음
1997년 3월 21일
본교의 어려움을 도와주시고 본교발전을 위해 남달리 애써 주셔온 박성수 장로님꼐서 지병의 악화로 희망학교를 지속적으로 도우라는 유언을 가족들에게 남기고 타계하셨음
1997년 5월
학생수 증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실 부족난이 대두됨으로써 자체능력으로는 그 해결을 위한 한계를 느껴 평소 본교를 사랑하고 도와 주셔온 분들을 중심으로 후원회 발기인 대회를 가져 허병록(국세청 지세국장)께서 초대회장으로 추대됨